때론 로맨틱하게 들리고 때론 오만하게도 들리는
때론 로맨틱하게 들리고 때론 오만하게도 들리는
2021년 4월 29일
“너를 나만큼 사랑해줄 남자는 더 이상 없을 거야.”
20대 초반, 심심찮게 들어본 진부하기 짝이 없는 대사였다. 놀랍게도 이 대사의 속내는 진부함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때론 로맨틱하게 들리고 때론 오만하게도 들리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오만한 갑이었던 C는 흔들리는 우리의 연애를 붙잡기 위해 항상 나를 곁에 두려 했다. 그는 내가 헤어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매번 정해진 대사처럼
“네 인생에 나만큼 널 사랑해줄 남자는 앞으로 만나지 못할 거다.”
라고 말했다. 이건 백 번을 헤어져도 백 번을 재회하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문장이었다.
‘그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 그의 사랑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그를 내가… 그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
자꾸만 의심하고 의심했다. 지금 사귀고 있는 그 사람만큼 날 사랑해 줄 사람이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 사람이 내 운명의 상대일 리가 없다는 진심과는 별개로, 나 또한 그를 내 곁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정한 을이었던 J는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항상 나를 풀어 두려 했다. 그는 내가 자신을 이성으로 의식하지 않는 듯한 언동을 할 때마다 매번 정해진 대사처럼
“네 인생에 나만큼 널 사랑해줄 남자는 앞으로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어.”
라고 말했다. J는 내가 백 번을 흔들려도 백 번을 돌아보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문장에 가두어지길 바랐다.
‘내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걸까. 나의 사랑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나는 그를… 아니!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괜찮아.’
두 번을 겪고 나니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 인생에 자신보다 나를 사랑해줄 남자는 더 이상 없을 거라던 C의 말은, J가 나타남과 동시에 거짓이 되었으니까.
몇 년 전, 내가 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가스라이팅’은 아직 생소한 단어였다. 영화 가스라이트(1948년작)에서 유래된 이 단어는, 연애를 포함한 전반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피해자가 자신이 피해자임을 인식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감에 따라 가해자에게 점점 의존하게 만드는 교묘한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했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그… ‘나보다 나를 사랑해줄 남성’ 따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누군가에겐 아버지마저도 그런 남성이 되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니 다정함인지 오만함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불장난이라면, 다 태워져 사라져 버리기 전에 도망가는 것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비상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