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 in Japan/Love, Men

솔로라는 이름의 익숙한 실루엣

로즈마카롱 2021. 9. 12. 22:00
728x90

솔로라는 이름의 익숙한 실루엣


2020년 11월 15일


  2019년 그 해에,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는 어마어마한 양의 일들이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 관리해야 하는 점포 개수는 나의 친구 수의 두 배는 웃돌고 있었으며, 그 점포들 중 반 이상의 담당자들은 내가 마치 그들의 전 애인인 마냥 이유 없이 못 되게 굴 뿐이었다. (그들의 사업장을 관리하기엔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일만으로도 벅차 연애 사업마저 온전히 굴러가지 않았던 그때 내가 유일하게 사랑하고 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빅토리아 시크릿의 파자마였다. 부드러운 소재 그리고 페미닌한 디자인에 늘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집에 돌아와 샤워 후 가볍게 걸치는 파자마 세트업이란 다른 누군가와의 가벼운 섞임보다도 날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다시 연애 사업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나는 주변인의 소개로 3살 연상의 대학생 H를 알게 되었다. 쌍꺼풀 진 눈에 코는 적당히 오똑하지만 둥글게 떨어지고 깊은 곳 속에 잠재된 가능성이 보이는…

평소엔 삼성전자의 합격 스펙보다도 더 많이 따지고 드는 나였지만 하루하루 일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이 커져갈수록 조건적인 것은 이미 흐려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H는 내 연애 면접의 서류 심사에도 못 미칠 정도의 남자였는데 외모도 성격도 그 어떠한 것도 나의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슬프게도 그의 취향마저 내가 아니었기에 애초에 '나'라는 회사에 지원조차 하지 않은 후보를 직접 합격시킨 것과 다름없었다.

사이즈 미스로 꽉 낀 파자마를 걸친 듯한 공적 회사 생활, 그리고 내 팔다리보다 10센티는 더 긴 듯 질질 끌려다니는 파자마를 입은듯한 사적인 연애 생활이 날 최악에 치닫도록 만들고 있었다. 이성의 존재를 그저 신입사원의 외로움 달래기용으로 생각하여 급하게 낙하산을 꽂아버린 나의 오만함이 문제였던 것일까? 일이 힘든 날일수록 그에게 따뜻함을 바라고 싶었고 그와 멀어질수록 안정적이던 실적은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새로운 파자마를 주문해야 했다. 그건 회사원도 애인도 아닌 나의 심신을 감싸 안아 줄 '솔로'라는 이름의 익숙한 실루엣의 것이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