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여성의 상관관계
2021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도록 케이크를 준비하지 못한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제국 호텔에 미리 예약해둘걸, 아님 지금이라도 메리어트 동긴자에 문의해야 하나?’
한참 고민만 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한 채 크리스마스까지 하룰 앞둔 오늘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동안 케이크가 실린 카탈로그를 보며 케이크보다도 새 남자 친구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올해는 마치 주문해본 적 없는 호텔의 것을 맛보고 싶다거나, 가격이나 디자인은 수수할지라도 조각냈을 때 보이는 크림 레이어가 화려한 것을 기대한다던가! 여러 케이크를 먹어볼수록 어떤 케이크가 내 취향인지 알아가는 한 편, 자꾸만 더 만족스러운 새로운 맛을 찾게 되는 건 20대 후반의 연애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흔해빠진 이타토마의 파스타 세트로 나온 쇼트케이크가 그리도 좋았다가 시간이 흘러 애프터눈티 티룸의 후식으로 나오는 쇼트케이크에 마음이 변하고, 성인이 된 이후 더 많은 케이크를 만나보니 예전에 먹던 맛이 시시해지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 물론 이타토마와 애프터눈티 티룸의 쇼트케이크는 모두 예전 그대로의 맛인데... 분명 맛이 변한 게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이 도시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여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24일까지는 불티나게 팔리는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25일엔 아슬아슬 그리고 26일이 되면 아무도 원하지 않게 된다. 여성의 나이도 이와 같아서, 24살엔 (일본 나이 기준이니 만 나이이다.) 많은 남성에게 어프로치 받지만 25살이 되면 선택지는 점점 좁아지고 26살마저 지나면 끝내 영원한 싱글로 남게 될지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설령 26살 이후 결혼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날이 아니면 의미 없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처럼 재고처리 취급되어 간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여지는 듯했다. 반면에, 남자 나이는 와인과 같기에 30살을 기점으로 점점 나이가 찰수록 맛이 깊어진다나 뭐라나.
26일 점심까지 늘어지게 자고 친구 J와 함께할 홈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딱히 케이크를 사려는 건 아니었는데 이케부쿠로역에서 연결된 세이부 백화점 지하에 아직도 여전히 다양한 종류의 케이크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묘한 안심이 되었다.
“뭐야, 26일에 와도 괜찮았네. 내일 와도 그다음 날에 와도 언제든 원하는 케이크를 살 수 있겠어.”
나와 같이 일본 나이로 26살을 앞둔 여성도 (한국 나이로는 이미 26살인데!) 고급 와인은 물론 30년이 차지 않은 캐주얼 와인 모두를 선호할 수 있다. 심지어는 나와 같은 케이크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니 구닥다리 도시 전설에 휘둘리지 말고 나의 외면과 내면을 프레시 하게 가꾸되, 점점 안목을 높여 도달한 최상의 그 맛을 추구하면 된다. 25일 단 하루뿐이 아닌 서로 함께할 많은 날들이 크리스마스 같은 기쁨으로 가득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케이크든 와인이든 어느 날 먹든 그 맛은 아주 달콤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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