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전히 마마의 미래를 꿈꾸며
2020년 12월 18일
오늘은 입사 동기인 Y가 관리하는 세이유(할인 마트) 네리마 지점에 그녀의 보조 역할로 동행하는 날이었다. 우린 창고에 쌓여 있는 재고를 꺼내어 들고 일용품 코너를 향했다.
“S사에서 오셨네요? 항상 수고 많으셔요.”
“S사에서 자주 와주시는 덕에 코너 정리가 전보다 수월해요.”
다정한 주부 직원들의 인사 속에서 말이다. 그렇게 담당 코너에 도착해 각자의 일에 한참을 열중하던 중, 갑작스레 어딘가 들뜬 표정으로 Y가 말을 거는 것이었다.
“나도 저런 마마(엄마)가 되고 싶어. 3년 후쯤 아이가 생기면 육아에 전념해야 할 테니까. 지금 다니는 우리 회사는 그만두고 오전에 잠깐 할인 마트에 출근하는 거지. 정말 행복할 거 같지 않니?”
나는 그녀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어색하게 웃곤 금방 입을 다물었다. 왠지 그녀가 뱉은 문장에는 작은 결의가 느껴지는 듯했으니까.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은 Y가… 엄마, 3년 후의 아이 그리고 육아… 지금까지 쌓아온 명문대 졸업과 대기업 입사,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다 져버리고 아이에게 집중하며 평생을 바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마음에 대해 경이로움마저 전해져왔다.
사실 Y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는, 그녀가 내뱉은 말이 아닌 바로 나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녀가 꿈꾸는 ‘마마의 미래’는 내 마음 한편에 몰래 키워온 ‘나의 미래’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모자랄 것 없이 편안한 싱글 라이프를 누리며 자유롭게 연애하며 살고 싶은 당당한 커리어 우먼의 자아. 그 이면에는 스스로 버는 사회 활동은 그만두고, 가족이나 장차 남편이 될 사람의 경제적 언덕에 비비며 가족의 테두리 안에 몰입해 살고 싶은 희망이 감춰져 있다.
‘일본의 여권은 아직도 낮은 채로 머물러 있어.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한 조건인 여성의 꿈이 좋은 마마가 되는 것이라니.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순 없는 거야? 시시해. 하지만… 지금처럼 사는 것보다 Y가 말한 마마의 미래가 더욱 편하고 행복할지도 몰라.’
모순 어린 부끄러운 희망이 자꾸만 피어올라 와서, 25살의 패기 어린 커리어 우먼의 자아마저 스멀스멀 잠식시켜 버릴까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쿄라는 도시에 오기 전부터, 여성의 인생은 결혼 전과 결혼 후로 나누어진다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말이 정확히 어떤 걸 명시하는지도 모르는 채 곧이곧대로 믿게 된 나는, 21세기가 지나도록 그 문장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도, 여전히, ‘마마의 미래’를 꿈꾸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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