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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 in Japan/Love, Men

불륜은 두 사람에게 언젠가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그 순간이 올 것이라

by 로즈마카롱 202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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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은 두 사람에게 언젠가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그 순간이 올 것이라



2021년 7월 23일


  내가 이 도시에서 줄곧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닐 때까지 늘 불편하게 혹은 의아하게 생각했던 미지의 세계가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불륜’의 세계였다. 나이 많은 아저씨와 원조 교제를 하는 친구, 유부남 교수님을 짝사랑했던 후배 그리고 묘하게 서로의 사생활까지 꿰뚫고 있는 듯한 직장 상사들… 항상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라 모른 척 피해왔다. 특히나 운명의 상대 따위를 믿는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선 안될 일이라 믿고 있었고, 주변에서도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주는 듯했다.

  불륜보다도 더 알 수 없는 일정이 있었던 그날은, 만난 적조차 없는 선배 Y와 시부야에 동행하는 날이었다. Y는 다른 부서에서 발령받아 넘어온 30대 후반의 기혼 남성이었는데, 나의 직속 선배가 갑작스럽게 휴직하는 바람에 그 자리를 대신해서 온 것이었다. 대략 10살이나 많은 선배와 파트너가 되어 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나의 새까만 펌프스를 타고 내려와 무리한 발목의 고통마저 잊을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늘 새로운 사람과 지내는 일은 설렘보단 부담이 앞섰다.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Y와의 오전 일정을 마치고 회사에 돌아가려는 찰나,

“모처럼인데 점심은 둘이 먹고 들어갈래요?”

라는 그의 말이 나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뭐… 거절할 이유도 없겠죠? 그럼 점심만 먹고 해산할까요?”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자연스럽게 어딘가로 이끌어 주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시부야 하치코 동상 가까이에 위치한 한국 음식점이었다. 설마 나를 배려해서 미리 찾아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이미 업무보다도 데이트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잠자코 있던 나를 보던 선배 Y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뜻밖의 고백을 해왔다.

“사실, 제가 한국을 아주 좋아해요. 한국 요리도 좋아하고… 그냥 한국에 대한 건 뭐든 좋은 이미지가 있어요! 그래서 새롭게 같이 일할 파트너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았을 땐, 저도 모르게 너무 기뻐했다니까요? 그러니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고 싶어요.”

 



  Y와 내가 파트너가 된 지 단 두 달 만에 우리는 분기 최고의 성과를 냈다. 최대한 즐겁게 일하자는 업무 마인드부터 다음 주력 상품을 정하는 기준과 비전까지, 심지어는 오늘의 점심 메뉴마저 완벽하게 일치한 것이 그 비결이었다. 팀원들과 마음이 맞지 않을 땐 둘이 빠져나가 점심을 먹는 날도 꽤나 잦았다. 특히 우린 회사 뒤의 작은 카레집을 좋아했는데, 카레를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는 업무 이야기가 전부였지만, 그 시간 동안은 편안히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있었다.

  Y는 내가 유일하게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선배였다. 절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이 도시의 법칙은 잊은 채 맘껏 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가 유일하게 존경할 수 있는 선배였다. 각자 제 할 일에 묻혀 주위 따윈 둘러보지 못하는 와중에도 늘 나를 챙겨준 다정한 사람이었다. Y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 확실해질수록, 그는 앞으로의 평생을 걸쳐도 나만을 위한 운명이 되어 줄 수는 없다는 사실 또한 또렷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미 운명의 상대를 만나 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한테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거야. 대체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 거지? Y는 나에게 무언가가 되어주길 바라고 있긴 해? 만약 그도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불륜. 아, 이런 게 세간이 말하는 불륜의 시작일지도 몰라.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문이 열리기 전에 미리 차단해 버려야...’

혼자만의 생각이 매듭짓기도 전에 눈앞의 상품 진열대가 우당탕 무너져 내렸다. 외근 작업을 하던 때 마저 정신이 팔려있었던 거다. 뾰족한 선반이 내 얼굴을 스쳐 볼엔 붉은 피가 났고, 나는 떨어진 물건 속에 파 묻혀 주저앉고 말았다. 이를 본 Y가 곧장 달려왔다.

“괜찮아? 놀랬지? 다친 곳은, 잠깐, 얼굴 좀 봐!”

그의 올곧은 손이 내 양 볼을 가득 감싸 안았다. 아주 짧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신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행동에, 급히 내게서 떨어지던 그를 보던 찰나의 순간…

‘아, 어차피 가정 밖에서 만나는 사이니까. Y의 아내나 아이에 관한 건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될지도 몰라.’

라는 무책임한 생각을 했었다.

 



  내가 발 디딜 뻔한 세계는… 역시나 당사자들이 말한 것처럼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불륜은 두 사람에게 언젠가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그 순간이 올 것이라 몇 번의 경고를 보낸다. 그 경고를 마음속에 새기고 주의하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드라마 ‘아네고’의 나오코가 그랬던 것처럼 ‘불륜만은 저지르지 않겠다’, 적어도 자신을 지키는 때까지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나 또한 낯선 내 모습에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나를 지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덕분에 그와 닿았던 그날부터 Y가 스카우트되어 이직을 하기까지 우리 사이에는 아무것도 발전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도시 전체가 나를 서툴다 생각할지라도, 그때의 일들을 몇 번씩 돌이켜 보아도… 자신의 운명의 상대라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 낳은 소중한 아이를 포기할 만큼 당연한 것은, 역시나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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