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도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타이밍을 엮고 또 엮어 #2
2022년 1월 17일
J와의 첫 데이트가 몇 년이 지나서가 아니다. 그가 입었던 와인색 블루종과 그가 운전한 와인색 차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날 뭘 했는지 조금도 떠올릴 수 없음은 아마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나눴던 대화 때문일 것이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너랑 데이트하면 당연히 즐거울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그게 정말로 즐거웠어!”
빨간 신호에 차를 멈춰 세운 그가 왼쪽으로 고갤 돌리며 말했다.
“나도 오늘 즐거웠어.”
나도 운전석의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사실 얼마 전에 일본인 후배랑 데이트(정확히는 외출, おでかけ라고 표현했다.)했었거든? 근데 그날은 말도 안 되게 재미없었어. 우리처럼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뭐랄까, 티키타카가 없었달까?”
J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여자 후배 이야기에 밀려온 당혹스러움 속에서 뭐라 반응을 해야 할까 한참을 헤매야 했다.
티키 카타, 정말 이게 만약 우리 둘 사이에는 존재하는 거라면, 나는 여느 때처럼 재미없는 유교 걸 대사를 내뱉으면 되는 걸까. 그는 그런 말을 하는 나와 대화하는 게 재미있을 테니까.
“후배랑 데이트했었구나! 너 오랫동안 오픈 릴레이션십 때문에 힘들어 보였는데 이제 여자 친구분이랑은 괜찮은 거야? 내가 말하긴 애매하지만, 음, 여자 친구분은 네가 후배와 외출한 건 알아?”
“응? 내 여자 친구는 모르지. 모른 달까 알려주지 않아도 돼. 지난 데이트 때도 나한테 뭐래는 줄 알아? 내가 누구랑 자든 상관없대. 그냥 결혼만 자기랑 하면 된대. 넌 이게 무슨 의민 줄 알겠어?”
“아니… 난 모르겠어.”
“놀고 오라는 거잖아. 자기는 풀어줄 테니… 결혼할 때쯤 내가 더 놀지 못해 아쉬워할까 봐. A는 그게 두려운 거야.”
그 말을 들으니, J를 향한 A의 사랑은 되려 클로즈를 위한 오픈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J를 잃을까 두려워 사랑을 시작할 때부터 완전한 그를 갖길 포기해 버린 거다. 결혼이라는 문을 꼭 닫아 잠그기 전까지 그 스스로 갇힌 걸 깨닫지 못하게 속이고 있는 거다. 부럽기도 밉기도 했던 A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나보다 그와 더 오래 더 가까이서 지낸 그녀니까. J에겐 오픈 릴레이션십만이 정답이라 판단한 타당한 근거를, 나는 모르는 근거를 그녀는 갖고 있을 것이다.
J의 커다란 갈색 눈동자에 비친 내 표정이 싫어졌다. 그래서 시선을 살짝 빗겨 그의 얼굴 뒤로 펼쳐진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여자 후배도 여자 친구도 내겐 상관없다는 거야. 아무래도 좋다고. 내가 너랑 뭘 하든 정말 괜찮다는 거야.”
“응…”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나와 자자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자길 잡아 달라 애처롭게 말하고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던 내 시선은, 그마저도 창에 비친 그의 머리칼을 향해 있었다.
“나 혼자서 갈게! 여기쯤에서 내려주면 돼. 오늘 정말 즐거웠어. 어… 다음 주나 그 이후에, 어, 만약 시간이 되면 영화나 보러 가자. 우리 둘 다 코코 보고 싶다 했으니까. 개봉하면 그 때나, 나중에 응, 보자!”
그냥 그의 유혹에 넘어가버리면 좋으련만. 횡설수설 도망치듯 문을 열고 내렸다.
“잘 못 걸었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했다니! 그건 너무 우스운 거 아니야? 전화는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롭다.”
“그러게. 목소리 들으니 좋네.”
“응, 나 회사 그만둔 이후론 계속 프리랜서로 지내고 있어. 그러니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면 돼.”
“아 정말? 그래도 돼? 좋아! 연락할게.”
“물론이지. 그런데 너 지금 밖이야? 주변 소리가 좀 들리는 거 같은데, 혹시 일행이랑 같이 있는 거면 지금은 잠시 끊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도 돼!”
“아, 응응. 사실 밖인 거 맞아. 아무튼 고맙고 꼭 다시 연락할게.”
우린 단 한 번도 제대로 맞물리지 못한 타이밍을 엮고 또 엮어 지금에 다 달았다. 그는 늘 여자 친구가 있었고 나는 때때로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내가 싱글이었던 때마다 그에게 흔들렸던 건지 누군가를 만나면서도 늘 그에 대한 호감은 감출 수가 없었던 건지… 우리 두 사람의 역사를 무어라 정의할 수는 없었다. 몇 년이 지나도 J는 여전히 내 남자 친구가 아니었지만 그가 보낸 갑작스러운 메시지가 휴대폰 액정에 뜨는 것은 굉장히 행복한 느낌을 준다. 부재중 전화는 더더욱.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던 그에게서 라인이 도착했다. 라인을 확인해보니 뜻밖의 문구였다.
[나 여자 친구랑 헤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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